[외신 번역/자체 번역] 에너지의 역사: 발전(發電) 산업의 역사 5부 -끝-
원문 기사: https://www.powermag.com/history-of-power-the-evolution-of-the-electric-generation-indu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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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에너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에너지원과 최신 에너지원
인류는 수천 년 동안 태양, 바람, 물에서 에너지를 활용해 왔지만, 역사의 흐름에 따라 기술은 크게 변화했으며 이러한 고대의 에너지에서부터 최첨단 혁신 발전원으로 끊임없이 발전해왔습니다.
물을 좇다. 현대의 재생 에너지 발전은 1800년대 후반, POWER가 출범할 무렵에 시작되었는데요. 수력 발전은 상업용 발전원으로 가장 먼저 전환되었고, 매우 빠르게 발전하였습니다. 1880년, 미시간주의 그랜드 래피즈 전기 조명 및 전력 회사(Michigan’s Grand Rapids Electric Light and Power Co.)는 울버린 체어 회사(Wolverine Chair Co.)에서 수력을 이용해 직류 전기를 생산했습니다. 공장의 수차 터빈으로 구동되는 벨트 구동 발전기로 16개의 아크 가로등에 불을 밝혔습니다.
불과 2년 후에는 세계 최초의 중앙 DC 수력발전소가 위스콘신주 애플턴의 제지 공장에 전력을 공급합니다. 1886년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40~50개의 수력 발전소가 운영되었고, 1888년에는 약 200개의 전기 회사가 전력 생산의 일부 이상을 수력 발전에 의존했습니다(자세한 것은 "전력 비즈니스 모델의 진화" 부분을 참고하세요). 1889년, 미국 최초의 교류 수력발전소인 오레곤주 오레곤시티의 윌라멧 폭포 발전소(Willamette Falls Station)가 가동되었습니다.
전력 비즈니스 모델의 진화현대 전기 유틸리티의 탄생은 1878년 토머스 에디슨이 실용적인 전구를 발명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새로운 발명품에 대한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전기를 생산하고 배분하는 전체 전력 시스템이 개발됩니다. 이 개념은 초기에 몇몇 도시에서 도입되었으나 막대한 비용 때문에 전력 회사가 여러 개의 발전소를 소유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1892년 시카고 에디슨(Chicago Edison)에서 사장으로 취임한 사무엘 인설(Samuel Insull)은 부하율을 최초로 활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발전 시스템과 교류 등의 기술을 이용하여 전력을 더 저렴하게 생산하고 송전하는 데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는 1907년까지 20개의 소규모 전력회사를 인수하여 자연독점기업인 커먼웰스 에디슨(Commonwealth Edison)을 탄생시킴으로써 통합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이 모델은 널리 모방되어 수십 년 동안 대규모 중앙 집중식 발전 기술과, 그와 관련된 규모의 경제는 수직적 통합을 통해 전력 비용을 낮추고 보편적 접근성으로 안정적인 전력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자 소유 유틸리티(IOU)와 고객의 책임과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이러한 접근 방식은 정부의 감독과 규제의 강화를 불러왔죠. 또한, 지방 자치 단체의 소유권과 이후 뉴딜 정책의 하나로 농촌 전기 공급을 위한 공공 전력 공급이 가능해졌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환경 정책, 석유 파동, 항공 및 트럭 운송 산업을 경쟁시키려는 계획이 현상 유지에 혼란을 주면서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더욱 뚜렷하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일어난 변화는 지속적인 유산을 곳곳에 남겼는데, 이는 경쟁 도입과 독점 유틸리티의 운영 방식 개혁이라는 두 가지 큰 흐름으로 분류될 수 있겠습니다. 미국에서 개혁을 시작한 핵심 단계는 1978년 공공요금규제정책 법(PURPA)이 통과되면서 소규모 발전업체가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창출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마지막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적 격변으로는 에너지 규제 완화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1990년대에는 경쟁이야말로 전력 비용을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원동력이라고 파악하고, 여러 주에서 소매에 대한 독점 보호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2000년과 2001년에 캘리포니아의 에너지 위기가 발생한 후 많은 주에서 이 계획을 축소하고 소매 부문에 대한 규제를 다시 강화하기에 이릅니다. 규제 완화는 고객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데만 집중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새로운 소매 기업을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탈 탄소화, 탈중앙화, 디지털화, 그리고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전력 수요가 둔화되거나 감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성장을 전제로 한 기존의 규제 접근 방식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산업 환경과 씨름해야 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전력의 양방향 흐름, 더욱 엄격한 환경 정책 및 국가 목표가 등장했습니다. 규제 당국은 전력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환경 목표를 준수하며, 안정성을 유지하고, 저소득층 이용자를 위한 형평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여러 과제를 안고 있는 셈입니다. |
스위스는 1909년 세계 최초로 양수식 발전소를 건설하여 양수식 발전의 선두에 있던 국가였죠. 1930년 코네티컷주 뉴밀포드에 코네티컷 전력회사(Connecticut Electric Light and Power Co.)가 양수식 발전소를 건설하기 전까지는 양수 발전은 미국의 주요한 에너지원에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바람을 일으키다. 수력 발전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던 시기, 발명가들은 과거의 풍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1888년 오하이오주의 발명가인 찰스 브러시(Charles Brush)는 자신의 뒷마당에 60피트 높이의 풍력 터빈을 만들었습니다(그림 6). 풍차의 바퀴는 지름이 56피트(약 17m)였고 144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타워 내부의 샤프트가 도르래와 벨트를 돌려 브러시의 지하실에 있는 배터리에 연결된 12kW 발전기를 구동시켰습니다.
풍력 터빈은 천천히, 하지만 견고하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터빈이 관개 펌프에 동력을 공급하는 데 사용되었던 미국 중서부 지역에는 많은 수의 터빈이 설치되었습니다. 1941년, '할아버지의 혹(Grandpa’s Knob)'이라 불리는 버몬트주 캐슬턴의 언덕에 그리드에 연결된 최초의 1.25MW 터빈을 설치되기에 이릅니다.
이후 풍력발전에 관한 관심은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인해 재차 높아졌고, 이는 연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좋은 기회가 됐지요. 지미 카터 대통령이 1978년 공공 유틸리티 규제 정책 법에 서명하면서 풍력을 포함한 재생 에너지원으로부터 일정량의 전력을 구매하도록 의무화되었고, 미국의 풍력 발전은 정책적으로도 큰 탄력을 얻게 됩니다.
1980년대에는 캘리포니아에 최초의 유틸리티 규모의 풍력 발전 단지가 등장하였습니다. 유럽은 1991년 덴마크에 최초의 해상 풍력 발전 단지가 설치되며 해상 풍력 발전의 선두주자로 우뚝 섭니다. 윈드 유럽(Wind Europe)에 따르면 2021년 말 유럽에는 236GW의 풍력 발전 용량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는 5년 전의 12.6GW 용량에 비해 매우 증가한 수치라고 합니다.
2016년 말에는 미국 최초의 해상 풍력 발전 단지인 5개의 터빈, 30MW 규모의 프로젝트가 로드아일랜드주 블록 아일랜드 앞바다에서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2022년까지 미국 전력망에 추가된 해상 풍력 프로젝트는 발전 용량이 12MW인 2 터빈 버지니아 해안 해상 풍력 시범 프로젝트(Coastal Virginia Offshore Wind pilot project) 한 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육상 풍력 설치는 훨씬 더 나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재생 에너지 옹호 단체인 아메리칸 클린 파워(American Clean Power)는 2022년 중반까지 미국에서는 139GW 이상의 육상 풍력 발전 용량이 계통에 연결되었다고 전합니다.
볕을 쬐다. 앞서 소개한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다른 재생 에너지원과 비교하면 태양광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지만, 뜻밖에 이미 200년 전부터 상업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답니다. 1839년 프랑스 과학자 에드몽 베케렐(Edmond Becquerel)은 전도성 용액에 두 개의 금속 전극을 넣어 만든 전해 전지를 실험하여 태양광(PV) 효과를 발견했습니다. 베케렐은 전지가 빛에 노출되면 전기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사실 또한 발견했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 후, 윌러비 스미스(Willoughby Smith)라는 영국의 전기 엔지니어가 셀레늄의 광 전도성을 발견합니다. 1882년 셀레늄에 금을 코팅하여 에너지 전환율이 1~2%에 불과한 최초의 태양 전지는 뉴욕의 발명가였던 찰스 프리츠(Charles Fritts)의 손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실리콘 태양 전지가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벨 연구소(Bell Laboratories)의 물리학자들은 실리콘이 셀레늄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DOE)의 발표로는 벨 연구소가 만든 전지는 "일상적인 전기 장비를 작동하기에 충분한 태양 에너지를 전력으로 변환할 수 있는 최초의 태양 전지"라고 합니다.
1970년대에는 태양 전지의 효율이 대폭 향상되어 많은 해양 가스 및 석유 굴착 장치, 등대, 철도 건널목 신호등의 내비게이션 경고등과 경적에 전력을 공급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용 태양광 애플리케이션은 그리드 연결 옵션이 적합하지 않은 외딴 지역에서는 꽤 매력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더 효율적이고 더 강력한 태양광 프로젝트 개발이 등장하였는데요. 1982년 캘리포니아 헤스페리아에서 ARCO 솔라( ARCO Solar)가 개발한 최초의 메가와트급 태양광 발전소가 가동되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1982년 DOE는 발전소 기술의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최초의 프로젝트인 10MW 중앙 수신기 데모 프로젝트인 솔라 원(Solar One)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1992년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University of South Florida)의 연구원들은 15.9% 효율의 박막 PV 셀을 개발하여 최초로 15% 효율 장벽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주택용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주택 개보수 전문점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유틸리티 규모의 시설에서 생산된 태양광 발전이 미국 전력 생산량의 0.9% 미만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태양광 산업은 날개를 달고 승승장구 중입니다. 태양 에너지 산업 협회는 2022년 3월 말 현재 미국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용량은 무려 126GW가 넘어섰고, 미국 에너지 정보 관리국은 2021년 미국 전력의 약 4%가 태양광 에너지에서 생산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모든 발전 유형의 역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와 관련된 부록을 참조하세요(powermag.com). ■
-POWER 수석 부편집 소날 파텔(Sonal Patel), POWER 편집장 아론 라슨(Aaron Larson), 전 POWER 리포터 애비 하비(Abby Harvey)가 이 기사에 기여했습니다.
[편집자 주: 이 기사는 원래 POWER 2017년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됩니다.]
에너지의 역사: 발전(發電) 산업의 역사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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